동아일보 다시, 숨을 쉬다

다시, 을 쉬다

By 인터비즈 브랜드 스튜디오 X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 기사는 ‘우리 가족 폐질환 이야기 수기 공모전’ 우수작을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이 기사는 ‘우리 가족 폐질환 이야기 수기 공모전’
우수작을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날짜가 잊히지도 않아요. 월급날이었거든요.”

2001년 4월 13일. 40대의 젊은 나이였던 김성진(가명) 씨는 여느 달과 같이 월급봉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계좌 이체가 아닌 현찰로 급여를 받던 시기. 환한 미소로 봉투를 받아들 아내, 그리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어린 두 아이를 떠올리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웃음은 거기까지였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컨디션이 안 좋더라고요.”

몸 상태가 평소 같지 않던 김 씨. 급기야 직장에서 돌연 쓰러지기에 이른다.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잠시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의식이 저하돼 정신도 여러 번 잃었다.

그는 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을 진단받았다. 의사는 아내를 따로 불러 이미 질환이 많이 진행돼, 폐 기능이 거의 손상됐다고 말했다. 급격히 악화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인데,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니 어이가 없었죠. 아직 너무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보며 가슴이 너무 아프고 모든 게 원망스러웠습니다.”

며칠 간의 입원 뒤 김 씨는 퇴원했다. 병원은 그의 폐 기능이 이미 너무 나빠져 특별히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병원에 가봤지만, 모두 같은 얘기를 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이미 늦었어요."

멀고도 가까운 호흡기 질환

지난 8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10대 사망원인(2021년 기준)을 발표하면서 만성폐쇄성폐질환을 4위에 올렸다. 대기 오염의 영향으로 2030년쯤에는 사망 원인 3위, 2050년에는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국내 주요 만성질환 사망률

(질병관리청, 2022)

악성신생물(암)
심뇌혈관질환
만성호흡기질환 만성
호흡기질환
당뇨병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기간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중 만성 호흡기질환 사망자가 암(26.0%)과 심뇌혈관 질환(17.0%)에 이어 3위(4.4%)를 차지했다.

COPD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COPD 인식조사, 2023)

68.4%모른다

31.6%알고 있다

조사대상 : 만 20세 이상 69세 이하 남녀 500명

문제는 이런 통계에 비해 폐질환의 심각성에 대해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한호흡기학회가 실시한 대국민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만성 폐질환인 COPD에 대해 ‘해당 질환을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이 70%에 달한다. 발병과 치료 회복 등 관련 지식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더 높았다.

들어보셨나요?
인지도 낮지만 치명적인 폐질환

질병명을 클릭해 증상을 확인해보세요.

만성폐쇄성폐질환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

대부분 40대 이후에 발병하게 되며, 유해한 입자나 가스 노출에 의해 유발된 기도와 폐포의 이상으로 인해 지속적인 기류 제한과 호흡기계 증상이 발생한 질병이다. 쌕쌕거리는 천명음이 동반될 수 있어 기관지 천식과 혼동하기 쉽다.

주요 증상

  • 호흡곤란
  • 기침, 가래

특발폐섬유증

(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IPF)

원인 불명의 폐실질의 섬유화가 만성적으로 진행되는 질병이다. 주로 노년층에서 그리고 폐에 국한되어 발생한다.

주요 증상

  • 만성 기침
    운동시 호흡곤란과 만성 기침
  • 청색증
    저산소증에 의해 입술 주변이 파랗게 질리는 현상
  • 곤봉지
    저산소증에 의해 손가락 끝이 둥글게 되는 현상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
폐질환 전조증상은?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최천웅 교수는 “기침과 가래 등과 같은 증상을 단순히 감기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45세 이상 성인 중 약 18%가 COPD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45세 이상 성인 5명 중 1명, 65~75세 노인 3명 중 1명, 65세 이상 흡연 남성 중 절반 정도가 갖고 있는 질환이라는 것.

이어 최 교수는 “하지만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은 비율인 진단율은 고작 2.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만성 질환인 당뇨 환자의 진단율이 65.2%, 고혈압 환자의 진단율은 71.4%인 것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최 교수는 “폐는 한번 손상되면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며 “COPD뿐만 아니라 모든 폐질환에서 전조 증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여러 연구로 인해 상태를 호전시키는 약물과 치료법 등이 등장했기에 빠르게 진단을 받고 꾸준히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폐질환 전조증상, 한 번 확인해보세요!

  • 원인 모를 기침과 가래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 친구 등 동년배와 걸을 때 걸음이 뒤처진다.
  • 언덕이나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매우 찬다.

“편안한 호흡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후 김 씨는 수소문 끝에 호흡 재활을 연구하는 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김 씨에게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권했다. 가격과 보급 등의 이유로 당시 국내에선 상용화가 어려웠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과 호흡 적응 훈련 모두 그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김 씨에게는 일반인 대비 20% 이하의 호흡 기능만 남아 있다. 인공호흡기와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호흡기 장애 1급이다. 하지만, 23년간의 꾸준히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며 호흡기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증상 및 질병 악화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도 했다. 그렇기에 다시, 숨을 쉬게 된 이 시간이 김 씨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지금 이렇게 다시 숨을 쉬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숨을 편히 못 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뼈저리게 느낀 만큼, 안타까운 마음도 종종 들어요.


많은 분이 부디 편안한 호흡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